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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렉산드리아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추억
    카테고리 없음 2023. 9. 24. 15:50

    직장인, 명절 휴가기간 이집트 여행 8

    < 이집트 여행 1일차: 카이로 공항 - 알렉산드리아 - 카이로 호텔 투숙 >

     

    하이집트 여행 1 -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 가는 길

    이집트 여행 1일을 시작한다.

     

     

    아침은 기내식으로 해결하고 카이로공항에 오전 9시 도착하자마자 버스로 갈아타고 알렉산드리아로 향한다.

    알렉산드리아를 여유있게 보려면 1박을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왕복 6시간 소요되기 때문에 다소 힘든 일정이다.

    혼자 갔다면 카이로를 어슬렁거리다 일찍 호텔로 들어갔을텐데 많은 사람들이 알렉산드리아를 신청한 것을 보니 인기가 있나 보다.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 알렉산더대왕(알렉산드로스 3세)이 기원전 331년 설립하였는데 알렉산더는 이 도시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계승자인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이곳을 수도로 삼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시작한 곳으로 그리스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헬레니즘 문화가 번성했었다.

    마지막 왕조인 클레오파트라 7세를 끝으로 로마에게 점령을 당한 곳으로 클레오파트라의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클레오파트라가 그리스 혈통인지 이집트 혈통인지 궁금하다.

    이집트를 역사적 시간에 따라 여행한다면 알렉산드리아는 방문 마지막 순서가 된다.

     

     

     

     카이로를 벗어나기가 무섭게 사막의 풍경이 펼쳐진다. 대추야자, 유칼립투스가 늘어서 있는데, 주요 산물 중 하나라고 한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렸는데 화장실에 돈을 받는 사람이 서있다. 무료 이용하는 기간이라 돈을 안내도 되는데, 일행 중에는 1달러를 낸 사람도 있다. 벌써 1달러 지출이 시작되었다.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에스프레소는 터키커피와 같이 걸쭉하고 우리가 먹는 아메리카노는 블랙이라고 부른다. 파운드로는 3달러가 안되나 3달러를 주니 거스름 돈은 안준다. 들린 곳마다 커피는 대부분 버튼을 누르는 자판기 형태를 사용하고  2~3달러를 받았다.

     

     

    헬레니즘 스타일의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로 들어서면서 지중해가 보인다.

    건물 외관은 이집트 스타일보다는 헬레니즘 스타일로 꾸몄고 발코니가 있는 곳도 있다.

    고대에는 로마보다 깨끗한 도시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카르푸등 대형마트, 대형식당들도 있으나 주택가 골목에 있는 가게들은 허름한 구멍가게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70~80년대 정도의 풍경이라고 해야 하나.

     

    차들이 차선도 없이 뒤엉키고 보행로가 없어 8차선 도로를 남녀노소 위험을 무릎쓰고 넘나든다. 유턴표시가 없어 적당한 곳에서 유턴한다. 이중주차는 기본이고, 주차해놓은 차들이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모래 먼지와 매연으로 세차를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래도 차가 코 앞을 지나가는 먼지가 날리는 좁은 골목길 어디든지 이를 개의치 않고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매우 낙천적으로 보인다. 

     

     

    차가 지나가는 좁은 도로 옆에서 차를 마시는 이집트인들. 뒤로 허름한 건물이 보인다.

     

    가이드 왈, 요즘 알렉산드리아가 주거지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집트에서 알렉산드리아 1시간 거리에 있는 엘다바(El Dabaa)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여 경기가 들썩인다고 한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2022년 한국수력원자력과 두산이 3조원 규모로 수주를 하여 이집트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아마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오면 도시의 모습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카타콤베 공동묘지

    대형버스가 좁은 골목을 들어간다. 건물에 부딪칠 것 같은데 아무렇지 않게 옆으로 사람들도 지나간다.

    콤 엘 쇼카파(Kom El-Shuqafa)주택가에 있는 카타콤베에 들어갔다.

    이곳은 물건을 싣고 가던 당나귀가 구멍에 빠지면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오랫동안 동네 우물로 쓰이고 있다가 발견되었다고도 전해진다.

    미국의 자본과 기술로 2017~2019년 사이 발굴되었으니, 아마 2019년 이전의 관광객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발굴 당시 제목이 “Groundwater Lowering Project”인걸 보아 지하수가 차 있었다고 추측된다.

    로마 귀족 가족 무덤이었다가 공동묘지로 확장되었고 300개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밖에는 이집트식 석관과 그리스식 석관, 그리고 로마시대의 유물들이 혼재되어 있어 알렉산드리아의 지리적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스식 석관

     

    이집트식 석관
    로마시대 분수(정원. 입구용)



    우물로 보인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무덤이 나타난다.

    역시 그리스식 석관과 이집트식 석관이 놓여있다. 벽에는 이집트의 야누비스, 오시리스, 이시스 등이 새겨져 있다.

    넓은 공간으로 석관 내지는 시신을 놓았던 2층으로 칸막이가 쳐진 공간들이 나타났다. 

     

     

    지하묘지의 그리스식 석관

     

     

    지하무덤 벽화 : 오시리스, 야누비스

     

    미이라를 보관했던 장소

     

     

    차를 타고 카타콤베를 나와 바로 옆길로 돌아서면 세라피움 신전이 보인다.

    신전의 잔해와 폼페이 기등만 남아 있고, 그 앞에 스핑크스가 보인다.

    프콜레마이오스 왕조 때 이집트인들이 섬겨오던 오시리스와 고대 멤피스의 주신인 황소 아피스, 그리고 그리스의 제우스와 디오니소스를 합성해서 세라피스라고 했는데, 이 세라피스신을 숭배하던 장소가 세라피움이었다. 

    여기도 발굴이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도서관

    그리스의 데메트리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로 기원전 307년경 정치적 반대파를 피해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여 프톨레마이오스 1세를 만나게 되었다.

    데메트리오스는 정치에서 벗어나 스승이 제시했던 열람, 연구, 그리고 교육을 하는 도서관을 짓는 것을 파라오에게 제시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여러 나라에 자료와 책을 요청했고 알렉산드리아로 모았다,

    도서관에서는 지식인들을 고용하여 여러 지역의 판본을 비교하여 원본에 가까운 것을 필사하였으며, 복사를 하고 돌려주겠다고 했으나 원본을 보관했다고 한다. 이 사업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까지 계속되었다.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이 도서관은 긴 시간에 걸쳐 파괴되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기원전 47년 카이사르가 이집트 원정을 왔을 때 배에 불을 질렀는데 이 불이 도서관에 옮겨붙었다 한다.

    또 391년 대주교인 테오필로스1세가 이교도의 신전들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여 파괴가 일어났다 한다.

    이후 641년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한 칼리파 우마르 이븐  알카타브가 끝내는 도서관의 책을 모두 불태웠다는 것은 확실하다.

     

    독특한 외관의 도서관. 내부는 관람료를 내야 들어간다.

      

     

     

    지금의 현대적인 도서관은 2002년 고대 도서관을 기념하여 지어졌다.

    전 세계에서 후원이 있었고 벽에 후원 국가의 글씨를 새겨놓았는데 한글 ‘월’ 자가 분명하게 보인다.



    카이트베이 요새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을 포함하여 주요 관람지는 지중해 해안에 위치해 있다.

    카이트베이는 맘루크 왕조의 술탄인데 여러 곳에 건축사업을 많이 했다.

    1477년 옛 파로스 등대 터에 성채를 건립했는데 이를 카이트베이 요새라고 부른다. 

     

    카이트배이 요새

     

     

    이 카이트베이 요새를 통하여 세계 최초 등대인 파로스 등대를 상상해본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도서관 뿐만 아니라 이곳에 등대를 건축했다 한다.

    130미터로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윗부분에서 빛이 나와 불을 밝혔으며, 이시스 여신이 꼭대기에 조각되었다하니 매우 멋진 모습이 상상된다. 방이 300개 넘게 있어 군 막사로도 쓰였다고 전해진다. 

    이 등대는 몇 차례의 큰 지진을 거치면서 14세기에 이르러 폐허로 변해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의 흔적은 어디에 있을까

    알렉산드리아는 지각판 두 개가 만나는 지역이며 단층이 지나가서 지진이 쉽게 일어나고 육지도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365년 알렉산드리아의 20%가 물에 잠겼다 한다. 그때 클레오파트라의 왕궁도 잠겼다고 추측하고 있다.

    바다 속에서 옛 유물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1600년도부터 이루어졌고, 1996년 파로스 등대의 잔해와 클레오파트라 왕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2009년 유적지에서 이시스 신전의 탑문을 건져올렸는데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수중박물관을 만들겠다고 하였지만 현재는 소식이 없는 상태이다.  



    현지식

    지중해안가에는 사람들이 많고 마차도 다닌다. 산책을 즐기는 연인들이 정겹다.

    저녁은 지중해변 이집트 레스토랑을 들어갔다. 처음 접하는 현지식이 궁금했다.

    처음에는 난과 소스가 나왔다. 난은 인류가 만든 빵 중 가장 오래된 빵이라고 한다. 소스는 병아리콩소스인 후무스다. 이후 스프가 나왔다. 맑은 국물에 호박을 잘게 넣었고 레몬을 곁들였다. 

    마지막으로 고기, 밥이 나온다. 향료가 강하지 않은 양파를 곁들인 닭고기 구이를 선택했다. 모두 먹을만 했다. 

     

    현지식

     

    저녁식사 후 카이로로 다시 돌아온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지만,  “말로만 듣던 알렉산드리아가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개인 여행을 할 경우 카이로 기차역에서 기차로 3시간30분 소요되니 차를 이용할 경우와 다를 바가 없다.

    기차는 바가지 요금없이 정직하고 내부에서 식사도 판매하니 좋을 듯하다.

     

     

    그랜드 나일 타워

    나일 강변에는 호텔이 즐비하다.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저렴한 카이로에서도 나일강변 호텔 가격은 만만치가 않다.

    콘래드, 메리어트, 힐튼, 인터콘티넨탈, 리츠 칼튼, 캠핀스키 등 유명한 호텔들은 비싸다.

    우리나라도 한강변을 선호하듯이 나일강변을 선호하나보다.

    카이로에는 다양한 호텔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넓다.

    우리는 나일강변 그랜드 나일 타워에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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