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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집트 유물의 보고, 카이로 국립박물관
    카테고리 없음 2023. 9. 24. 16:49

    직장인, 명절 휴가기간 이집트 여행 9

    <여행 2일차 : 국립박물관 - 콥틱지구 - 이슬람 모스크 - 궁전박물관> 

     

    하이집트 여행 2 - 카이로 

     

    나일강과 카이로

    이집트 여행 2일차. 오늘은 카이로를 둘러본다.

    아침에 호텔 숙소 창으로 나일강을 보았다.

    건너편 건물이 안보일 정도로 뿌였다.

    우리나라도 미세먼지로 시야가 보이지 않는 날들이 있고, 이것이 매연과 중국의 황사 때문이라 하는데 이집트는 왜 그럴까. 모래 먼지라고 하는데 그것도 원인이지만 도시에 1억 명이 집중해서 살기 때문에 매연이 많은 것이 또 한 원인이 아닌가 싶다. 

     

    나일강변 건물들. 미세먼지로 보이지 않는다.

     

     

    조식을 먹으러 1층 부페식당으로 갔다.

    나일강을 바라보며 이것 저것 골라서 맛있게 먹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한다.

    식사 후 강가로 나가 한강처럼 찰랑찰랑한 강물을 볼 수 있다. 

     

    90%가 사막인 땅에서 나일강으로 인해 고대문명을 꽃피웠던 곳.

    백나일강은 부룬디, 탄자니아를 거쳐 빅토리아호수로 들어가고 우간다를 지나 남수단, 수단에 이른다.

    청나일강은 에디오피아에서 시작하여 수단에서 백나일강과 합쳐져 이집트를 흘러 삼각주를 형성하고 지중해로 빠진다. 

    백은 밝은색 토양이 섞여 있고, 청은 유기물이 들어있는 검은색에 가깝다.

    나일강이 고원의 유기물을 가지고 와서 하류에 퇴적하여 삼각주를 형성하기 때문에 심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는 비옥한 땅을 가지게 되니, 이집트 사람들은 신이 내린 축복의 땅이라고 여겼다.

     

    나일강 주변은 녹색으로 경작을 통해 생명이 자라고 사람도 생활하는 땅이어서 이집트인들은 나일강변에 모여 산다.

    매년 범람하여 땅을 집어 삼키고 다시 옥토를 일구는 과정을 보면서 삶과 죽음이 연결되고 다시 태어나는 반복되는 세계관을 갖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나일강 출처: 나무위키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가 일정했기에 이를 피해 농사를 질 수 있었고, 범람으로 토지가 변화하기 때문에 측량술과 수학, 천문학이 발달했다 한다.

    우리는 음력을 중심으로 농사를 짓는데, 이집트는 나일강의 홍수가 언제 올 것인가를 예측하기 위해 태양력(달력)을 세계 최초로 사용했다. 

     

    이 외에 이집트가 세계 최초인 것은 배, 빵, 화장품, 모기장, 시계, 치약, 비누 등 많아서 다른 지역에서는 신석기 시대였을 당시 문화의 최첨단을 걸었었다.

    기원전 3천년경에는 다른 나라들과 오랜 시간 교류가 없었는데 독자적으로 중앙집권 국가를 이루었고,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으며 지금까지 보존이 된 대형 건축물을 지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거리를 지나면서 보면, 이집트는 건물을 완공하면 세금을 많이 내고 건축 중인  건물의 세금은 적다고 하여 대부분의 건물이 철근이 노출되고 짓다 중단된 듯한 건물에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파트 안에 싱크대, 에어컨, 붙박이장 등을 모두 넣어서 준공하고 판매하지만, 이집트는 건물 뼈대만 해서 판매하고 추가로 꾸미는 것은 매입한 사람이 하는 경우가 많다 한다.

    그래서 카이로를 보면 허름한 건물이 많이 보이고 첫 인상은 슬럼가 같기도 하다. 

    더군다나 매연과 함께 4월 경에 모래 폭풍이 불면 모래를 뿌옇게 뒤집어 써서 색깔있는 건물도 회색빛 건물이 된다 하니 전체적으로 회색 또는 노란 모래색 건물이 주종을 이룬다.

     

    카이로 중심에서 30분 정도 가면 뉴카이로가 있는데, 이곳은 아파트와 쇼핑몰이 즐비한 신도시이다.

    그래서 구 시가지를  올드 카이로라 부른다. 

    고대 이집트의 수도인 멤피스는 카이로에서 나일강을 따라 상이집트 방향으로 20km 떨어진 현재의 헬완(Helwan)이라는 곳이며, 로마에게 멸망당할 당시는 알렉산드리아가 중심이었다.

    카이로는 969년 파티마왕조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카이로를 ‘알 까히라(승리자)’라고 칭하며 중심지가 되었다.  

     

     

     

    국립박물관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은 국립박물관이다.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모아놓은 곳이어서 볼 거리가 넘치기 때문이다.

    카이로 방문의 핵심이 아닐까한다.

    다른 곳은 시간이 안되면 건너뛰어도 되지만 박물관은 반드시 들려야할 곳이다.

    런던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 등에 이집트 유물이 엄청나게 많이 있어 이집트에 있어야 할 것이 다 여기와 있다고 충격을 받았던 것이 생각난다. 

     

    기자지역 대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으로 파라오의 미이라와 유물들이 많이 이전해갔고 고 개장 시기가 늦춰지고 있기 때문에 전시된 유물이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랜드박물관이 2023년 9월 이후 개장한다니 훨씬 알차게 볼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국립박물관 입구

     

     

    흥미있게 본 유물은 박물관 +동선에 따라 다음과 같다. 

     

     람세스 2세 석상 
    1층 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람세스2세의 석상이 압도한다.
    석상은 손에 왕의 인장을 꼭 쥐고 있다.
    람세스 2세는 시리아, 히타이트, 누비아, 리비아와 전쟁을 벌이면서도 재위 기간 동안 아부심벨, 룩소르, 카르나크 등 곳곳 에 신전을 엄청나게 확장하고 자신의 상을 많이 만들었다.
    신전을 모두 보고 나니 이집트 하면 람세스2세가 떠오른다.
    대영박물관에는 아부심벨 신전의 석상을 잘라갔다 한다. 루브르박물관에도 람세스2세의 좌상이 있다.

     

    박물관에서 만난 람세스2세 석상

     

     

    로제타스톤   
    로제타스톤은 사막으로 사라질뻔한 이집트 고대문명을 연구하는 계기가 된 돌로 유명하다.
    진품은 대영박물관에 있고 이곳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라 한다.

    로제타스톤의 스토리는 이러하다.
    나폴레옹은 인도를 점령한 영국을 견제하고자 했다.
    영국과 인도 사이를 차단하기 위해 이집트 정복에 나섰고 1798년 알렉산드리아 옆 로제타에 군 진지를 구축했다.
    군인이 주춧돌로 막사를 설치하려는 것을 본 동행한 고고학자가 이 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보고 모셔두었다.
    이집트 원정이 실패로 끝났면서 나폴레옹은 탈출하고 남은 프랑스군이 영국 배를 만나자 프랑스군을 무사귀환시켜주는 조건으로 영국군에게 이 돌을 주어 결국 대영박물관에 있게 되었다.

    이 돌은 기원전 196년에 프톨레마이오스 5세를 찬양하는 글로 새겨졌다 한다.
    새겨진 글씨는 세 부분인데 신관 계층이 쓰던 신성문자, 신성문자를 변형하여 만든 민중문자, 그리스 계열   파라오가 집권하면서 사용한 그리스 문자(콥트 문자)로 같은 내용이 쓰여 있어 이집트 고대어를 해석하는  단초를 열었다고 한다.
    이를 해석한 사람은 로제타스톤을 가져간 영국인이 아닌 프랑스인 샹폴리옹이다. 

    1800년대에 샹폴리옹이 이집트 언어를 해석할 때까지 오랜 기간 묻혀 있었던 이유는 그리스도교가 이집트에 전파되고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신전 폐쇄 명령을 내리면서 이집트 고대 언어를 알던 신관 계층이 몰락했고, 콥트 문자가 보급되면서 민중문자도 사라진 때문이라고 한다.

     

     

     

     

    나르메르의 팔레트
    나르메르는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일한 파라오로 알려져있다.
    이 팔레트는 기원전 3천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실제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팔레트 앞면 위 양쪽으로 바트(소. Bat)여신이 새겨져 있다.
    농사를 짓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나 이스라엘의  바알신도 같다고 여겨진다.
    이 신은 후에 하토르(Hathor) 여신과 같아 모든 유적지에서 볼 수 있다.
    나르메르가 상이집트의 왕관을 쓰고 부족의 족장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데 그 위에 매와 파피루스가 있다.
    매는 호루스로 파라오의 상징이며, 파피루스는 하이집트를 나타내는 것으로 상이집트의 나르메르 파라오가 하이집트를 정복하여 통일했다고 해석이 된다.
    뒷면에는 하이집트의 관을 쓴 나르메르 앞에 왕의 옥쇄를 시종이 들고 있고, 장대를 들고 있는 4개의 부대가 있고 참수당한 적들이 있다.. 
    이 팔레트는 이집트는 초기에 확립된 세계관이 멸망할 때까지 그대로 갔다는 것을 증명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나르메르 팔레트 앞면

     

         

     

    아멘호텝3세 가족
    나르메르의 팔레트에서 눈에 띄게  거대한 석상이 보이는데 아멘호텝3세와 티에왕비 , 그리고 세 딸이 다리 사이에 서 있다.
    아멘호텝3세는 멤논의 거상, 카르나크 신전 개축, 오벨리스크를 세운 기원전 14세기인 18왕조의 파라오이다.

     

     

     

    라호테프와 네페르트
    2층에 올라가면 기원전 2600년경 만들어진 라호테프와 부인 네페르트의 좌상이 있다.
    특징은 눈을 유리알로 살아있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당시 눈화장을 짙게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남녀의 옷차림을 알 수 있는데 얇은 아마포를 입은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라호테프와 네페르트

     

     

    투탕카멘왕의 황금 석관
    2층에서 꼭 봐야 할 것은 투탕카멘왕의 특별 전시물이다.
    내부의 황금 마스크와 황금 관은 사진을 못 찍게 한다.
    황금 석관을 보니 그 크기와 무게에 놀랐고, 금 공예 솜씨가 섬세하고 대단했다.  
    밖에 전시한 투탕카멘의 황금의자도 엄청 화려하다.

     

     

     

    YUYA(유야)의 파피루스
    말로만 듣던 파피루스와 '사자의 서'를 실물 영접했다.
    유야의 무덤에서 나온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길이가 19.37m으로 박물관 벽에 걸려있다.
    '사자의 서'는 고대 이집트의 관 속에 미이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세계의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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