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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읽기 - 「친일파의 한국 현대사」3
    카테고리 없음 2023. 9. 6. 17:06
    부제: 친일파 매국노 44인의 이야기 .  정운현지음. 인문서원. 2016.
     
     

     

     

    11. 김희선(1875 ~ 1950)

        - 두 번이나 변절한 임정 군무부 차장 출신으로 독립유공자로 둔갑

     

       1910년 항일운동을 하고자 중국 본토로 가던 중 일본 관헌에 체포되어 강제 귀국

                   직업적 친일분자 육성정책(1980년대 녹화사업과 같다)에 친일로 전향

       1913년 평남 개천군수, 1915년 평남 안주군수 임명. 

       1919년 ~ 1921년 사이토 총독 세 차례 면회.

       1919년 상해 임시정부 군무부 차장 , 육군 무관학교 교장, 군무총장 대리 역임

       1922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었으나 변절(밀정)

       1930년 한일병합 20주년 기념 대례기념장 수상

        해방 후 서울시 임시정부 추진회 부회장, 육군상이군인유가족회장

       1963년 임시정부 활동으로 대통령 표창

       1980년 보훈처 공적 재심사에서 3등급 국민장 추서(유관순 열사, 임시정부 요인급)

       1996년 서춘 등 친일행적 5명에 독립유공자 예우 취소

     

     

         

     

    12. 박춘금(1891 ~ 1973)

         - 일본 본토에서 활동한 대표적 친일파

     

        1921년 도쿄에서 친일 단체 상애회 조직  

        1923년 일본 가토대지진에서 노동봉사대 조직하여 조선인 희생자 처리와 복구 작업

        1928년 상애회에 총독부 경무총감 출신 마루야마 쓰루키치 영입

        1932년 도쿄 중의원 의원(국회의원) 당선, 1940년 재선.

        1943년 서울에서 매일신보 주최 학병격려대연설회 참석, 내선일체 주장.

                  일제로부터 정3품 훈2등 서훈.

        1945년 서울에서 친일파들로 대의당 결성, 당수 취임.

                    해방 후 일본으로 밀항         

     

     

     

    13. 선우순(1891 ~ 1933), 선우갑 형제

         - 직업적 친일분자와 고등계 형사

     

        선우순

        1919년 일본인들과 '배역유세단' 조직. 조선인들에게 만세를 부르지 말도록 종용.

                    조선독립불능론 강연.

        1920년 친일단체 '대동동지회' 창설, 초대 회장 취임. 독립사상 파괴가 목적.

                    기관지 [대동신보], 월간지 [공영] 발행. 일선융화, 공존공영의 내용을 담음.

                    평양부 협의회 의원(시의원) 선출

         1921년 중추원 참의 임명, 1933년까지 연속 중임됨

     

        선우갑

        일본 경시청 고등계 형사로 일본에 파견되어 조선인 유학생 감시 역할

        1919년 도쿄 2,8 독립선언 당시 중심인물들을 체포

        1919년 3.1의거 직후 기자 직함으로 미국에 파견되어 일본 선전,

                      재미 독립운동가 감시

     

     

       

    14. 이갑성(1889 ~1981)

        -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이었다가 변절, 해방 후에도 승승장구.  

     

        1919년 3.1 의거에 참여. 태화관에서 체포. 

        1922년 출옥. 당해 민립대학 설립 필요성 강연으로 체포되어 6개월 복역.

        1929년 '신간회 사건'으로 6개월 복역

        1930년 출옥 후 상해로 감

                    상해에서의 행적이 불투명하고 친일을 했다는 증언이 많음.

                    - 이와모토 마사이치로 창씨개명

                    - 임시정부와 교류없었음

        1937년 일경에 체포되어 서울로 옴. 1년만에 가출옥.

        1945년 이승만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참여, 반탁운동.

        1947년 미군정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당선

        1950년 대구 민의원 당선(국민회 소속)

        1952년 이승만 전시내각 국무총리로 임명. 국회 인준 부결.

        1961년 5.16  쿠데타 지지

        1962년 공화당 창당 발기위원,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대통령장

        1963년 독립운동자 공적심사위원

        1965년 초대 광복회장. 3.1동지회 고문. 이준열사기념사업회 총재 등 독립운동 단체의 거물로 활동

        1981년 사회장

        1993년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재심사 대상자. 혐의는 밀정.

     

     

    15. 방응모(1883 ~ 1950)

        - 친일 언론 재벌

     

        1933년 자본금 20만원으로 '주식회사 조선일보'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 3월에 경영권 인수 부사장 취임.

                    7월 사장 취임

                   조선군사령부 애국부에 고사기관총 구입비 1,600원 헌납

        1935년 경기도 수원 97만 평 간척사업 추진

         1936년 총독부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 김활란, 김성수 등과 발기인 참여

                    제2차 전선순회 시국강연반 강사

        1937년 함경남도 영흥 일대 3,200평 조림사업

         1940년 조선일보 자매지 조광에 친일 논설 기고

         1941년 임전대책협의회 위원으로 참여하여 채권 가두판매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전쟁 조력) 중역으로 피선

         1945년 조선일보 복간

         1950년 납북 후 사망

                    양자 방재윤(형 방응곤의 차남) 의 아들 방일영이 조선일보 사장이 됨

                    방응모의 아들이 셋이 있으나 당시 어려서 방재윤의 후손들이 계승하게 됨

         1988년 방일영의 아들 방상훈이 조선일보 승계. 부인은 친일파 윤치호의 증손녀인 윤순명임.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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